〈의식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 이미 일어난 일이 '경험'이 되는 방식
과학에 조금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한번쯤 슈뢰딩거 고양이 사고실험을 들어봤을 것이다.
상자 안에 설치된 장치 때문에 죽을 확률이 절반인 고양이.
그러므로 관측 전엔 고양이의 생사가 50%씩 섞인 중첩상태란 얘기.
이중슬릿 얘기도 들어봤을 것이다.
관측하지 않을땐 간섭무늬를 그리다가
관측하면 점으로 찍힌다는.
그런데 여기엔 모두가 쉽게 빠지는 착각이 하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식"이란게
어떤 결과를 선택한다는 말인가?
내가 보았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내가 느꼈기 때문에 의미가 생기는 걸까?
1. 사건은, 우리가 알기 전에 이미 일어난다
이중슬릿 실험 얘기로 다시 가보자.
이게 "관측"이란 단어 때문에
마치 우리가 쳐다보면, 관찰하게 되면
사건 발생 여부가 갈리는 것처럼 이해하게 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사람이 쳐다보지 않은 상태서
기계만으로 관측할때 같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야 하니까.
카메라 센서가 빛을 받아 기록할 때,
컴퓨터가 값을 갱신할 때,
신경세포가 임계점을 넘어 발화할 때,
거기에는 느낌도, 자각도, 의식도 없다.
그런데도
- 결과는 정해지고
- 가능성은 사라지고
-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즉, 사건은 의식 없이도 충분히 일어난다.
2. 그렇다면 의식은 도대체 뭐 하는 걸까?
주사위를 생각해보자.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우리는 마지막에 뭐가 나왔는지
그걸 보는 것.
즉, 의식은 이미 일어난 일을
"경험으로 정리하는 구조"다.
말이 어려운데 사실 우리는
매일 이와 같은 일을 겪으며 산다.
같은 사건을 겪고,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상처를 받고
어떤 사람은 농담으로 넘긴다.
컵에 물이 반 담겨있으면
누군가는 "반이나" 채워졌다고 보고
누군가는 "반 밖에" 없다고 본다.
이처럼 사건은 하나인데
경험은 전혀 다르다.
이는 사건 자체가 달라서가 아니라,
그 사건을 묶는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3. 의식은 '선택자'가 아니라 '투사면'이다
의식은 무언가를 고르는 손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현실이
비칠 수 있는 면이다.
현실은 이미 일어났고, 그중 일부만이
내 몸, 기억, 성향, 학습, 맥락에 맞게
경험으로 남는다.
즉, 의식 자체가 사건을 만들거나
의식 자체가 결과를 만드는 게 아니다.
다만, 이 현실 중에서
어떤 부분을 하나의 경험으로
재구성하고 유지할지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즉, 의식은 사건의 원인이 아니라,
경험의 기하학 ㅡ
어떻게 배치되고, 어떻게 연결되는지의
구조라 할 수 있다.
4. 결정하지 못해도, 의미는 남는다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내가 관측하는 대로 세상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면
삶의 결정권이 내게 없다는 말 같으니까.
그래도 너무 실망은 말자.
세상 일들, 내가 직접 결정하는 건 아니라도,
그 경험이 어떻게 재구성 될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으니까.
같은 길을 가더라도
누구는 어둠만을 보고
누구는 밤하늘의 예쁜 별빛을 보듯
그를 통해
누군가는 나아갈 힘을 잃고
누군가는 빛을 심는 사람이 되듯
우리의 삶은 여전히
각자의 손,
각자의 의식에 달려있다.

※ 본 글은 저자의 논문을 바탕을 작성되었습니다.
Consciousness Field: A Minimal Structural Definition
https://doi.org/10.5281/zenodo.18028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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