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기울기>
나는 글을 쓸 때 모든 것을 계획하지 않는다.
큰 흐름, 몇 개의 앵커만 잡아둔다.
그리고 나머지는 흘러가게 둔다.
이야기는 예상대로 가지 않는다.
옆으로 새기도 하고, 돌아가기도 하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길로 흐르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길은 중요하지 않다.
방향이 중요하다.
글에는 기울기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흐름의 방향.
그 기울기는 중심에서 만들어진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 이야기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 기준이 지형이 된다.
산 위에서 물을 흘려보내면
물은 제각각 다른 길을 만든다.
어떤 것은 곧장 떨어지고,
어떤 것은 돌아가고,
어떤 것은 잠시 고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모두 같은 곳으로 간다.
지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도 같다.
세부는 통제하지 않아도 된다.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된다.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흐름은 스스로 정리된다.
길을 잃을 수는 있다.
하지만 방향을 잃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글을 설계하기보다
기울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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