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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적당히"라고 할까

규리네 2026. 6. 2. 20:42

<엄마는 왜 "적당히"라고 할까>

ㅡ 정답이 없는 게 아니라, 정답이 움직이는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러 갔다.

 

계속 내리막만 있으면 무섭기만 하고 재미없다.

계속 똑같은 속도로 달리기만 하면 금방 지루해진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빨라졌다 느려졌다.

그 변화 속에 재미있는 지점이 있다.

 

샤워할 때 물 온도도 그렇다.

너무 뜨거우면 못 들어가고, 너무 차가우면 피한다.

몸에 딱 맞는 온도가 있다.

 

음악도, 영화도, 대화도.

너무 단순하면 지루하고, 너무 복잡하면 피곤하다.

아무리 흥미로운 것도

변화없이 지속되기만 하면 재미없다.

 

우리는 이걸 본능적으로 안다.

그런데 그 "딱 맞는 지점"이 어디냐고 물으면 —

대답하기 어렵다.

 

왜일까?


1. 엄마의 "적당히"

 

요리를 배우려고 엄마한테 물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거 어떻게 해요?"

"적당히."

"얼마나요?"

"보면 알아."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이게 정확한 답이다.

 

요리는 그날 재료 상태, 불 세기, 냄비 두께,

심지어 날씨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소금 한 스푼이라고 정량을 정해두면 —

어떤 날은 짜고, 어떤 날은 싱겁다.

 

잘하는 요리사는 정량대로 넣지 않는다.

조금 넣어보고 간을 보고, 더 필요하면 더 넣고,

불을 조절하고, 뜸을 더 들이거나 줄인다.

 

매번 실시간으로 조정한다.

 

"적당히"는 무능한 대답이 아니었다.

매순간 살아있는 조정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2. 김치 봉사 현장에서 생긴 일

 

늦가을에 김치 봉사를 간 적이 있다.

 

각자 자기 집에서 오랫동안 김치를 담가온 사람들이 모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만든 김치가 맛없었다.

 

현장을 보니 이유가 보였다.

 

어떤 집은 설탕 대신 사이다를 쓰고,

어떤 집은 과일을 갈아 넣고,

어떤 집은 생새우를 많이 넣는다.

 

각자 자기 집 방식대로 하다보니 의견 충돌이 생겼다.

결국 이 사람 방식 조금, 저 사람 방식 조금 섞였고 —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김치가 나왔다.

 

집집마다 레시피가 달라도 각자 집에서 담그면 다 맛있는 이유가 있다.

각 집마다 자기 재료와 상황에 맞게

짠 정도, 단 정도를 조율해왔기 때문이다.

그 조율이 무너진 자리에, 맛없는 김치가 남았다.


3. 고정값이 아니라 움직이는 범위

 

GCB(Goldilocks Coherence Band)

시스템이 살아있기 위해 머물러야 하는 범위.

 

그런데 이 범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재료에 따라 달라지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시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롤러코스터의 재미있는 구간이 어디냐는 —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샤워 물 온도가 얼마가 적당하냐는 — 계절마다, 몸 상태마다 달라진다.

음식 간이 얼마나 돼야 하냐는 — 그날 재료마다 다르다.

 

"적당한 것"이 없는 게 아니다.

적당한 것이 매번 달라지는 것이다.


4. 관계도 마찬가지

 

두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도

고정값이 없다.

 

힘든 시기엔 더 가까이 있어야 하고,

각자 성장이 필요한 시기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오래된 관계일수록 더욱

그 범위가 조금씩 달라진다.

 

"우리는 이 정도 거리가 좋아"라고 딱 선을 그어버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어긋나기 쉽다.

상황이 달라졌는데 거리는 그대로이니까.

 

마치 조율하기 귀찮다고 악기 한번 조율하고

그 자리를 본드로 고정시켜버리는 것처럼.

 

조직도 그렇다.

초기 스타트업 시절과 100명이 된 현재의

필요한 소통의 밀도는 다르다.

그럼에도 같은 방식을 고집하면

어느 순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상황은 변했는데 조율은 멈췄기 때문이다.


5. 적당함의 어려움

 

물론 처음부터 "적당히"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정량을 배우고,

그 다음에는 왜 그 정량이 필요한지를 배우고,

마지막에는 상황에 따라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적당히"는 무지의 언어가 아니라

숙련의 언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정답을 원하는 건 게을러서만은 아니다.

 

정답은 편하다.

 

책임도, 고민도 줄고

에너지도 덜 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적당히"보다

"정답"을 원한다.

 

정답은 외우면 되지만,

적당함은 계속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시스템이 피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조율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6. 살아있는 조정

 

엄마의 "적당히"가 정확한 답이었던 이유는

그게 실시간 조정이었기 때문이다.

 

정량을 외운 게 아니라,

그날그날 재료를 보고, 간을 보고,

상황을 읽으면서 조율했다.

 

그 피곤한 조율을 기꺼이 해내는 마음,

엄마의 '적당히' 속엔 그 같은 정성이 함께 들어 있었다.

 

관계도, 조직도,

살아있는 시스템은 이와 같다.

 

한 번 정해서 고정해두는 게 아니라,

계속 보면서, 조금씩 조정하면서,

그 살아있는 범위 안에 머무는 것.

 

그게 "적당히"의 진짜 의미였다.

 

적당함은 숫자가 아니다.

살아있는 조정이다.

 

 

※ 본 글은 저자의 논문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The Cosmic Resonance Goldilocks Zone: A Scale-Invariant Stability Principle Governing Life, Mind, and Universe

https://doi.org/10.5281/zenodo.17959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