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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나오지 못했나

규리네 2026. 6. 3. 10:42

<그들은 왜 나오지 못했나>

— 사이비 종교와 탈출 비용

 

탈퇴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밖에서 보면 이해 못 하죠. 근데 안에서는 나오는 게 불가능했어요."

 

JMS, 신천지...

대형 사이비 종교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비슷한 질문이 따라온다.

 

그렇게 당하고서도 왜 못 나오지?

이용당하는 거 뻔히 알면서?

 

그러나, 그 질문에 "멍청해서"라고 답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1. 누구든 빠질 수 있다

 

사람은 원래 외롭다.

불안하고, 의미를 찾고 싶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 이상한 게 아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것들이다.

 

취업에 실패했을 때, 사기를 당했을 때,

오랫동안 혼자였을 때.

그런 마음은 더욱 커진다.

 

그 틈을 사이비 종교는 정확하게 파고든다.

 

처음에 만나는 건 좋은 사람들이다.

따뜻하게 챙겨주고, 밥도 사주고, 연락도 자주 한다.

"여기 오면 외롭지 않다"는 감각이 먼저 온다.

 

명확한 세계관도 있다.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설명해준다.

내가 왜 힘든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흔들리던 사람에게 그건 구원처럼 느껴진다.

 

당시 그 사람에게는 그 선택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취약한 상태에선 판단력도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2. 조여드는 구조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구조가 달라진다.

 

모임 횟수가 늘고, 헌금이 늘고, 외부 관계가 줄어든다.

가족이나 친구가 걱정하면

"그 사람들은 이해 못 해"라는 말이 돌아온다.

 

점점 바깥이 멀어지고, 안쪽만 가까워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되돌아보면 —

 

인간관계, 돈, 시간, 정체성.

삶의 대부분이 그 안에 들어가 있다.

 

JAM(Joint Alignment Memory).

시스템이 한 방향으로만 정렬되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진 상태.

 

나쁜 걸 몰라서 남아 있는 게 아니다.

알아도 나올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3. 나오는 비용

 

"왜 진작 나오지 않았어요?"

이 질문에 탈퇴자들은 대부분 같은 말을 한다.

 

"나오면 잃을 게 너무 많았어요."

 

인간관계는 거기 다 있고, 돈도 이미 들어갔고,

몇 년의 시간도 거기 있다.

나온다는 건 그걸 전부 포기한다는 뜻이다.

 

STC(Structural Transition Cost). 전환 비용.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갈 때 지불해야 하는 구조적 비용.

 

처음엔 작다. 나오면 친구 몇 명을 잃는 정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비용이 커진다.

 

1년이 지나면 1년치 관계와 시간.

5년이 지나면 5년치 삶 전체.

 

나오는 게 점점 더 비싸진다.

그러다 그 비용이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순간 —

사람은 나오는 선택 자체를 포기한다.

 

탈출구는 있다.

그러나 그 문을 통과하는 비용이 너무 커졌다.


4. 비웃는 것은 쉽다

 

"왜 저걸 믿어?"

"조금만 생각해도 알 텐데."

 

비웃는 건 쉽다.

그러나, 그 구조를 이해하는 건 훨씬 어렵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이 특별히 약하거나 멍청한 게 아니다.

외롭고 불안한 순간에, 따뜻하게 다가오는 곳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천천히 조이기 시작한다.

마치 올가미처럼,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욱 옥죄는,

나올 수 없게 만드는 구조가 서서히 완성된 것이다.

 

여기에 "거길 왜 들어 갔냐"는 사회적 비난은

그들이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더 좁게 만든다.

 

이미 큰 비용을 치러야 할 이들에게,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라는 또 다른 비용을 얹기 때문이다.


5. 열린 문 앞에서

 

이는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SNS 중독도,

가스라이팅 같은 폭력적인 관계도,

자녀의 인생에 모든 것을 붓는 부모도,

망해가는 조직에 남는 것도.

 

처음엔 자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택지가 줄어든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방향을 바꾸지 못한다.

특히 삶의 많은 부분이 한 곳에 연결되어 있을 수록.

 

우리는 누구나,

삶의 어느 순간엔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무언가를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이유는 생각보다 자주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밖에서 보면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그런데 안에서는 그 문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어져 있다.

 

 

※ 본 글은 저자의 논문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Joint Alignment Memory (JAM): Multiplicative Condensation of Meaning into Persistent Structure.

https://doi.org/10.5281/zenodo.18231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