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수 없는 플로피 디스크>
— 존재하는 것과 접근 가능한 것은 다르다
창고 정리를 하다가 오래된 8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발견했다.
까맣고 납작한 그것.
라벨에 무어라 적혀있다.
분명히 안에 뭔가가 들어있다.
하지만 이젠 그걸 열어볼 방법이 없다.
지금 컴퓨터엔 그걸 읽는 장치가 없다.
CD조차 인식 못 하는 컴퓨터도 있다.
카세트테이프, VHS 비디오...
요즘 아이들은 그게 뭔지도 모른다.
사라진 건 아니다.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읽을 수 없다.
1. 존재한다는 것과 접근할 수 있다는 것
정보가 존재하는 것과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느냐는
서로 다른 이야기다.
마치 문자는 남았지만 해독법은 없는 옛 기록물처럼.
이스터섬의 롱고롱고 문자, 인더스 문명의 문자...
분명히 무언가를 기록한 것이다.
체계가 있고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내용을 알지 못한다.
존재는 유지됐지만
그것을 읽는 방법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2. 잊어버린 것과 읽을 수 없는 것은 다르다
여기서 한 가지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여기 버려진 폐교가 있다.
건물은 남아 있다.
운동장도 남아 있다.
그런데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다.
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잡초가 자라고, 사람들이 떠나고,
그곳으로 향하던 경로 자체가 잊혀졌다.
이것은 Structural Amnesia다. (이전 글 참고)
예전에는 접근할 수 있었던 장소가
점점 낯설어지고,
결국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희미해지는 것.
그러나 플로피 디스크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어디 있는지도 안다.
안에 데이터가 있다는 것도 안다.
문제는 읽을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열쇠를 잃어버린 상태.
그래서 Structural Amnesia가
'경로의 소실'에 관한 이야기라면,
플로피 디스크는
'접근 가능성의 소실'에 더 가깝다.
3. 블랙홀과 사라진 정보
물리학에도 비슷한 논쟁이 있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정보는 어떻게 되는가.
오랫동안 그 정보들이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에서는
정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보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많다.
정보는 파괴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읽을 수 없는 형태로
남아있을 뿐이라고.
블랙홀의 표면,
호킹 복사,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기하학 안에.
사라진 게 아니다.
읽을 수 없게 된 것이다.
4. 존재하는 것과 접근 가능한 것
우리는 종종 접근할 수 없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존재한다는 것과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마치 창고 속 플로피 디스크처럼.
해독되지 않은 고대 문자,
블랙홀 너머의 정보처럼.
읽을 수 없다고 해서
그 안의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존재란
지금 손에 잡히는 것만을 뜻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읽을 수 없다고 해서,
닿을 수 없다고 해서,
정말 그것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플로피 디스크의 자성(磁性) 속에,
해독법을 잃은 고대 문자의 선(線) 속에,
블랙홀 표면의 기하학적 궤적 속에,
한때의 살아있었음이
분명한 흔적으로 남아있으니까.
※ 본 글은 저자의 논문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Recoverability as Existence: A Structural Condition for Being in the IPCSALT Framework
https://doi.org/10.5281/zenodo.20248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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