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스몰토크 시 MBTI 얘기를 꺼내는 건
무엇보다, '빠른 친밀감 형성'이 목적일 것이다.
부모님, 아내까지 앞에 우리라고 말을 붙일 정도로
한국은 무척이나 "우리" 문화인데
MBTI는 여기에 아주 좋은 도구라는 것이지.
일종의 저비용 친밀감 형성 도구.
깊이 파고들 필요 없이 유형만 말하면 상대방이 알아서 이미지 그려주는.
그런데. 그렇게만 따지자면 다른 나라와 달리 왜 유독 우리나라에선
첫만남서부터 MBTI 얘기를 서슴지 않고 얘기하는 것일까?
예전엔 MBTI대신 혈액형을 물었더랬지. 혹은 별자리나.
지금은 그게 비과학적이란게 많이 알려져서 그걸로 스몰토크 주제 삼진 않는데,
뭐, 덕분이랄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보통 누구나 자기 혈액형, 별자리, MBTI정도는 외우고 다닌다지.
그러나 만약 우리나라식으로 외국 사람과의 스몰토크에서
이런거 주제로 꺼내면 몹시 이상한 사람이라는 취급받기 딱 좋다.
문화권에 따라 다르긴 한데, 보통은 상대방의 직업이라든지 취미라든지, 그런걸 묻거든.
그만큼 우리나라 한정 주제라는 거지.
그러니 단순히 빠른 친밀감 형성 만으로 설명하기는 그렇고.
그래서 내가 봤을때 우리나라에서 MBTI란
"너라는 사람을 빠르게 분류해서 대화 안전지대를 찾고 싶다."는 신호.
이를테면
T/F → 위로해줄까 해결책 줄까
E/I → 계속 말 걸어도 되나 조용히 둬야 하나
J/P → 계획 얘기해도 되나 즉흥으로 가도 되나
N/S → 추상 얘기해도 되나 현실 얘기해야 하나
이걸 파악해서 그에 적절한 대처를 하겠다는 것이지.
말하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몰토크시 MBTI를 곧잘 꺼내는 건
대화 기술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효율적이고 안전한 사회적 코드를 찾은 거라는 거.
이게, 아무래도 처음부터 깊은 질문 들어가면 실례라고 여겨지잖아.
그래서 대놓고 이거저거 묻긴 뭐하고.
근데 우리나라는 언어 특성상 상대에 대해 뭔가를 잘 알지 못하면
대화의 시작조차 안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단 말이지.
대표적인게 '너'다. 영어로는 그냥 'You'라고 하면 되지만
우리나라에서 상대한테 '당신'이라고 했다간 싸움나기 십상...
관계, 상황에 따라 호칭이 전부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스몰토크시 오갈수 있는 많은 대화주제도 같은 맥락에 있단 말이지.
헌데 대략적인 사회적 지도를 그릴 수 있는 도구가 떡 하니 생겼으니.
더구나 우리나라서 MBTI는 대중용 심리테스트마냥 재미있는 무언가로 취급받고.
그리하여 MBTI라는 가벼운 주제로 시작해서
겸사겸사 상대에 대해 대략적으로 감잡고
여기서 더 나아가 가족 이야기, 정치, 철학, 진짜 취향 등 같은걸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발판을 마련하는거지.
그런데, 사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MBTI는 실제 심리학계에선
신뢰도와 타당도에 대한 비판이 꾸준하다.
(미국심리학회나 대부분의 성격심리학 교수들은 MBTI를 과학적으로 신뢰할 만한 도구로 인정하지 않고,
대학 심리학과 수업에서도 재미로 쓰는 건 괜찮지만, 진지한 연구나 임상에서는 쓰지 말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사람성격이 칼로 자르듯이 딱 잘라져서 16개 유형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무리지.
(하다못해 사주팔자도 518,400의 조합수가 나오는데!)
그러나 사용하기 쉽고 직관적이고,
관계 중심 + 라벨링 좋아하는 문화고,
여러 분야서 마케팅에 써먹기도 좋으니
인기가 있는 것일뿐.
따라서 당연하게도 "이 사람은 ISTJ니까 믿을 수 있어" 같은 식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좀 과장 붙여서, 현대판 골상학이라 생각하는 1인... 혈액형으로 성격분류하던 옛날과 여전히 다를바 없다고 생각함)
그러나 말했다시피, 애초에 스몰토크 시 MBTI는
과학적 정확도보다 초기 대화 안전장치로 쓰이는 것이므로
스몰토크 주제로 MBTI를 꺼낸다고 해서 극대노 극혐까지 할 것까지는 없으시겠다.
반대로 스몰토크 주제로 이런거 꺼내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 서로서로 알아두자.
어차피 세상사는거, 굳이 싸워가며 살기보다 둥글둥글~하니 살면 좋자나?ㅎ
이상 오늘의 생각메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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