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훈은 왜 456억을 두고도 행복하지 못했나>
— 돌아왔지만 돌아오지 못했다
오징어게임의 주인공 성기훈은 살아남았다.
456명 중 마지막까지 버텼다.
원하던 돈도 손에 쥐었다.
그런데 게임이 끝난 후,
그는 그 돈을 거의 쓰지 못했다.
통장에 456억이 있었지만
1년이 넘도록 허름한 고시원에 머물고,
1만원조차도 떨며 빌려썼다.
어디로든 돌아가려 했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돌아가려 했던 곳에
함께 기뻐해줄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돌아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그 답을 찾지 못했으니까.
1. 문이 열려 있다는 것과,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우리는 종종 이 두 가지를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나갈 수 있으면, 돌아갈 수 있다고.
돌아가면, 그곳에 집도 있을 거라고.
하지만 문을 통과하는 것과
통과한 후 돌아갈 곳이 남아있는 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다.
RtR(Right to Return). 귀환권.
단순히 경로가 존재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 경로 끝에 돌아갈 것이 아직 남아있는가의 문제다.
2. 우리 주변의 이야기
크게 성공했다.
돌아가려 했다. 문도 활짝 열려 있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을 돌아보니 건강이 없었다.
같이 기뻐해줄 사람이 없었다.
돌아가고 싶은 일상이 사라져 있었다.
돌아갈 수는 있는데, 돌아갈 '그곳'이 없었다.
사과하고 싶었던 사람이 있다.
오래 미뤘다.
바빠서, 쑥스러워서, 언젠가 하면 되니까.
이윽고 마음을 먹었을 때
그 사람은 이미 멀리 떠난 뒤였다.
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그런데 문 너머의 그 사람이 사라졌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있다.
모든 걸 버티고 돌아왔는데
고향이 없었다.
집도, 사람도, 그 풍경도.
살아서 돌아오는 길은 있었다.
근데 돌아갈 그곳이 사라졌다.
3. 문 너머의 것
문이 잠기는 것만이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아니다.
문은 열려 있는데
문 너머의 것이 사라지는 방식으로도
귀환권은 닫힌다.
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내가 성공하고 나서도 거기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가장 무서운 순간은
단순히 문이 잠기는 순간이 아니다.
진짜 무서운 순간은
돌아갈 곳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친구들과 연락이 끊어지고,
다른 선택지를 상상할 수 없게 되고,
예전의 나를 떠올리는 것조차 어려워지는 것.
그때에 사람은 갇힌다.
감옥에 갇혀서가 아니라,
돌아갈 좌표를 잃어버려서.
4. 돌아갈 자리
우리는 종종 문이 잠기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어떤 문은 잠기는 대신
문 너머의 풍경이 먼저 사라지고는 한다.
사람은 언제나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모도,
친구도,
고향도,
예전의 자신도.
어쩌면 우리는 머뭇거리는 동안
돌아가야 할 곳들을 조용히 놓치고 있을지 모른다.
문이 잠기기 전에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 너머의 것이 사라지기 전에 돌아가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그 자리가 영원히 거기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 본 글은 저자의 논문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Filter Bubbles as Two-Surface Phase Misdiagnosis in Hourglass Geometry
https://doi.org/10.5281/zenodo.1818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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