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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는 고쳤는데, 왜 같은 일이 반복될까

규리네 2026. 5. 31. 20:24

<제도는 고쳤는데, 왜 같은 일이 반복될까>

ㅡ 표면 회복과 구조 회복은 다르다

 

1997년,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았다.

 

기업들이 쓰러지고,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금모으기 운동이 시작됐다.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그리고 3년 후.

한국은 IMF 졸업을 선언했다.

외환보유고가 쌓였고, GDP가 회복됐고,

세계는 한국의 빠른 회복을 기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정말 회복된 걸까?


1.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

 

위기 이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기업 구조가 조정됐다.

금융 시스템이 개편됐다.

회계 기준이 강화됐다.

외환보유고 관리 방식이 달라졌다.

 

이것들은 빠르게 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

제도, 정책, 숫자로 보이는 것들.

 

그러나 바뀌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사람들의 판단 방식.

위험을 감수하는 문화.

문제를 처리하는 습관.

성공을 바라보는 기준.

 

이것들은 법으로 고칠 수 없는 것들이다.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2. 게임 속 스킬과 비슷한

 

게임 캐릭터에 두 종류의 스킬이 있다.

 

액티브 스킬 — 상황에 따라 쓰고 바꿀 수 있는 것들.

패시브 스킬 —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것들. 쉽게 바꿀 수 없다.

 

IMF 이후 한국이 고친 것들은 대부분 액티브였다.

빠르게 바꿀 수 있었고, 실제로 바꿨다.

 

그러나 패시브는 그대로였다.

 

패시브가 그대로인 채로 액티브만 고치면

환경이 바뀌었을 때 패시브가 다시 작동한다.

그리고 비슷한 문제가 다른 모양으로 돌아온다.


3. 표면 회복과 구조 회복

 

IPCSALT Framework에서는 이 차이를 이렇게 부른다.

 

① 표면 회복 (Superficial Recovery)

숫자가 돌아오고, 제도가 정비되고, 겉으로 보이는 지표가 회복된다.

빠르게 일어난다. 눈에 띈다. 측정하기 쉽다.

 

② 구조 회복 (Structural Recovery)

위기를 만들어낸 내부 패턴이 바뀐다.

같은 압력이 와도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느리게 일어난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측정하기 어렵다.

 

표면 회복은 필요하다. 없으면 안 된다.

그러나 표면 회복만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면 — 위험하다.

 

구조가 그대로라면, 비슷한 압력이 왔을 때

시스템은 다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회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이야기의 다음 챕터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4. 비단 나라만의 얘기가 아니다

 

같은 패턴은 더 작은 단위에서도 보인다.

 

이혼하고 재혼했는데 똑같은 문제로 싸운다.

다이어트에 성공했는데 1년 후 원래 몸무게로 돌아온다.

번아웃이 왔다가 회복하고 복직했는데 또 같은 방식으로 일한다.

팀이 해체됐다가 새로 꾸려졌는데 같은 갈등이 반복된다.

 

숫자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고, 심지어 사람이 바뀌어도 —

내부 패턴이 그대로라면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5. 그렇다면 구조 회복은 어떻게 보이는가

 

구조 회복은 생각보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숫자가 갑자기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신문 헤드라인에 크게 실리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종종 과소평가된다.

 

구조 회복은 오히려

같은 문제가 다시 왔을 때 드러난다.

 

이전에는 무너졌던 상황에서,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이전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던 시스템이,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는가.

 

그것이 구조 회복의 신호다.

 

진짜 변화는 처음 위기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 위기에서 드러난다.


6. 회복을 어떻게 볼 것인가

 

IMF를 극복했다는 말. 맞는 말이다.

그 숫자적 극복은 분명 필요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우리가 극복한 것이 '숫자'인지,

'구조'인지를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숫자를 극복했다.

제도를 고쳤다.

그건 분명하다.

 

그런데 위기를 만들어낸 구조를 바꿨는가.

같은 압력이 왔을 때 다르게 반응할 수 있게 됐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

다음 위기가 왔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회복은 끝난 것이 아닐 수 있다.

아직 진행 중인 것일 수 있다.


※ 본 글은 저자의 논문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Recoverability-Based Evaluation (RBE): What Performance Metrics Miss About Irreversible States

https://doi.org/10.5281/zenodo.18144148

Recoverability as Existence: A Structural Condition for Being in the IPCSALT Framework

https://doi.org/10.5281/zenodo.20248785